주말의 나른한 오후, 유튜브를 보다가 입이 심심해 카프리썬을 가져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카프리썬은 하나 당 빨대가 같이 붙어 있다. 그런데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빨대가 떨어졌다. 카프리썬을 먹다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도저히 빨대를 줍기 위해 의자를 빼고 허리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듣기로 허리를 숙이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허리 건강보다는 귀찮음이다.

 

그런데 마침 옆에 칼이 있었다.

 

생각보다 한쪽 귀퉁이를 잘라서 먹는 것은 빨대로 먹는 것보다 불편했다. 흡입을 하면 쭉 올라오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내부 기압이 낮아지면서 좁은 입구쪽이 자기들끼리 들러붙어 잘 나오지 않는 상황 같았다.

 

그래서 입구 쪽을 좀 벌리려고 봤더니 뭔가 희끗한 것이 있다. 포장지에 딱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살짝 너덜거리긴 하는데 그렇다고 잡아당겼을 때 딸려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지도 6개월이 넘었지만 가끔씩 이렇게 학생일 때처럼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있다. 길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은 결국 순수한 호기심일 때 가장 극대화 된다는 것이다. 이걸 알아본다고 누가 돈을 더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득 보고 나니 포장지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알아보기로 했다.

 

알아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난 이럴 땐 몸이 먼저 움직이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논문 쓸 때 고생을 많이 헀다. 실험으로 다 떼우느라고.)

 

가장 확실한 법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따봤다.

 

흰색 띠가 보인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빨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부분인 것 같다. 포장지는 전체적으로 알루미늄 같은 느낌으로 되어 있다. 진짜 알루미늄이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플라스틱 재질의 빨대로 뚫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힌트를 남겨둔 것 같다. 앞에서 보면 카프리썬을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이 자리이다.

 

이렇게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저 하얀 부분을 굳이 이렇게까지 길게 뽑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을 위해 필요한 부분에 비해 너무 많은 재료가 소모된 것 같다. 뚫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뚫리는 부분에 대해서만 이렇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는 편이 재료적인 관점에서도 더 절약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제조 과정에서의 다른 부분 때문에 비용이 더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빨대가 저 흰색 부분을 미는 힘이 흰색 부분과 포장지 사이의 접착력보다 강해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흰색 부분이 포장지에 전체적으로 붙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빨대 투입구 둘레 부분만 붙어있고 나머지는 떨어져 있으며 양쪽 끝 부분만 포장지를 파우치 형태로 붙이는 과정에서 틈새에 넣어 같이 붙인 느낌이다. 앞서 귀퉁이만 자르고 먹다가 희끗한 부분을 당겼을 때 딸려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재활용도 어려울 것 같다. 이쯤 되어서야 포장지에 포장 재질이 나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확인해보니 폴리에틸렌이다. 이런 재질 쪽은 잘 모른다. 에틸렌을 여러개 이어지게 만든다는 것, 사슬이 한 줄기로 이뤄졌던 것 정도가 기억난다. 찾아보니 대충 맞다. 어쨌든 플라스틱이라는 소리다. 

 

폴리에틸렌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것 같은 다른 블로거가 잘 설명해준 내용이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깊은 내용을 알아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폴리에틸렌(Polyethylene; PE)

폴리에틸렌(PE) 이란? 폴리에틸렌(Polyethylene, PE)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고분자이...

blog.naver.com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은, 포장지에는 폴리에틸렌이라고만 써있는데 과연 모든 부분이 폴리에틸렌인가 하는 점이다.

 

포장지를 보면 절대로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플라스틱 소재는 내가 아는 선에서는 절대로 카프리썬 겉 포장지와 같이 금속 느낌의 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을 폴리에틸렌으로 코팅했을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무위키를 보니 알루미늄이 맞다고 한다. 이러면 재활용이 제대로 되나...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포장지를 나사에서도 쓴다는 것이다. 

꽤 오래전 영상이지만 이 영상을 5분 40초 부분부터 들어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카프리썬"이라고 하는 것이 들린다. 이게 2013년의 일이니 어쩌면 "쓴다" 보다는 "썼다"가 좀 더 확실한 표현일 것 같다. 어쨌든 나사가 아무거나 쓰지는, 혹은 썼지는 않을 테니 그 성능은 확실히 좋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요구르트의 알루미늄 포장이 터진 상태로 배송된 적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카프리썬이 포장지가 튿어진 채로 도착한 적은 확실히 없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호기심이 발동해 다소 쓸데 없다고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 봤다. 하지만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궁금한 부분에 대해 직접 조사해보고 알아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몸을 직접 움직인 것도 좋았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궁금해야 움직이는 것 같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그게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되는 날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상 바닥에 떨어진 빨대를 줍기가 귀찮아 카프리썬 귀퉁이를 잘라서 먹다가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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