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재주가 좋은 편이다.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내 장점들 중 하나이다. 손재주가 좋다 보니 어릴 때부터 이것 저것 만들기를 좋아했다. 레고를 접하기 전 사촌형으로부터 받은 k'nex라는 입체 블럭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고, 이후에는 레고를 가지고 이것 저것 만들기를 좋아했다. 보통은 자동차나 바퀴 없이 이동이 가능한 이동수단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있었던 일이다 보니 크게 원리를 따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형태적으로는 그랬다. 

 

생각난 김에 바로 해봤는데 아직 된다.

 레고를 사용하면 만들 수 있는 형태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그래서 나무젓가락을 깎아 보기도 했다. 사실 당시 친했던 친구의 형이 일본 여행에서 사온 목제 일본도가 아주 멋있었는데, 그걸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실제 사이즈로 만들 수는 없어 선택한 방법이 나무젓가락을 깎아 미니어처를 만드는 것이었다.  결과도 나름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그냥 만드는 과정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학접기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손으로 하는 일이니 나도 동참했었다. 이 때 내가 얼마나 작은 학을 접을 수 있을지에 도전한 기억이 있다. 크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작게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학종이의 크기가 5 cm X 5 cm 정사각형이니 아마 16등분을 해서 1.25 cm X 1.25 cm의 종이로 학 접기를 시도했던 모양이다. 무난하게 성공했다. 오른쪽 사진은 1 cm X 1 cm 크기로 A4용지를 잘라 접은 학인데, A4는 너무 두껍다. 좀 더 얇은 종이를 쓰면 형태가 좀 더 예쁘게 나올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성경책...?

 

 이런 것들 외에도 당시 남자들이 잘 하지는 않던 바느질, 십자수, 뜨개질 등등을 곧잘 했었다. 기본적으로 성격 자체가 세심한 것도 있고, 손재주 자체는 좀 타고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부할 때는 집중을 못해도 꼼지락거리며 보내는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곤 했으니. 사칙연산 능력 향상을 위한 '기탄수학' 풀이 시간은 나의 소소한 손장난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손으로 직접 해보는 것이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집중하기 쉬운 일이었다. 아마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손재주 형성에는 꽤나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그 덕분인지 수능을 두 번 치르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보통 어려워했던 기하와 벡터를 이상하게 유독 잘 풀었던 기억이 난다. 안타깝게도 그것만 잘 풀었던 것이 문제였지만.

 

 이런 소질이 삶에 반영되기도 했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만든 컵은 아직도 연필꽂이로 잘 쓰고 있고 스마트폰 거치대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우드락을 잘라 직접 만들었다. 군대에서는 후임들이 대걸레에 물을 흠뻑 적신 채로 들고 온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가 했더니 화장실에 하나 있던 대걸레 짜는 기구가 고장난 것이었다. 위에 보고하고 고치는데 걸릴 시간과 불편함을 생각해보니 아주 까마득해서 그냥 내가 가서 고친 일도 있었다. 손을 댔다가 더 망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자부품이 들어있지 않은 기구는 고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전역한 뒤에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방학때 하드웨어 팀과 소프트웨어 팀으로 나뉘어 진행된 '로봇팔 만들기' 프로젝트였는데 나는 하드웨어 팀에 소속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쉽게도 프로젝트 자체는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내 삶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머릿속에 떠도는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 마땅치 않아(물론 핑계에 가깝긴 하지만) 필요하거나 만들고 싶은 것들을 그저 상상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토캐드'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내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3D 프린팅을 통해 만질 수 있는 실체를 제작할 수 있었다.

오토캐드를 통해 설계하고 3D 프린터를 제작한 아이들

 

 덕분에 내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해서, 혹은 내가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 볼 수 있었다. 인턴 생활을 하던 연구실(이제 대학원생이 될 예정)에서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3D 프린터로 제작이 가능한 선에서 직접 만들어 그 불편함을 해소했다. 실험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생활에 있어서도. 특히 실험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기구들을 연구실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나에게 캐드 프로그램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설계하고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과정은 지금껏 만들고 싶었던 것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쌓였던 일종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건전한 취미생활임과 동시에, 떨어지는 학점 탓에 바닥을 치던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지탱해주던 든든한 보루였다.

 

 이것 저것 만들며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내던 나는 '로봇팔 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총 4명이 팀을 꾸려 경진대회에 참가했다.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로봇을 만드는 대회였는데 팀에서 내 역할은 하드웨어 총괄이었다. 나머지 3명의 팀원들은 전부 소프트웨어 팀으로, 코딩을 담당했다. 내가 생각해도 코딩이 확실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하드웨어를 전부 나한테 맡긴 것은 나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덕분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의 자유도는 100%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결과는 아쉽게도 장려상에 그쳤지만 이 경진대회를 통해 전에 없이 가파르게 성장했다는 것이 더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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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캐드로, 대회에서 지정한 프로그램으로 설계를 하고 3D 프린터를 통해 제작한 로봇. 결과는 장려상.

 

 경진대회 입상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캐드를 잘 한다고 하는 말에 내심 동의하며 감사를 표한 것이. 이전까지는 손사레를 쳤지만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애초에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굳이 그렇게까지 거부반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또한 내가 아직 모르는 점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 배우면서 채워 나갈 생각이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이런 이야기도 좀 해볼까 한다. 앞으로도 내 삶에 불편한 점들은 분명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나는 성격상 그것들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뭔가를 계속 만들어낼 것 같다. 특히 '캐드'와 '3D 프린팅' 조합으로. 그 과정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을 위한 일이지만 혹시나 누군가 그 기록을 보고 도움을 받는다면 참 뿌듯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될 것 같다. 자기 만족이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 과정에서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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