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공돌이는 이제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동시에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다. 작년 이맘때 아무것도 모르고 인턴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제 그 연구실에서 새로운 학위를 시작하려고 한다. 대학원 진학에 관해서는 아마 다시 글을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진학에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언급하게 되겠지만 미리 스포를 살짝 하자면,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 연구실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들 중 하나는 지도교수이다. 그리고 내가 속한 연구실 지도교수님은 좋은 분이시다. 아직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인턴을 시작하기 전부터 좋은 소문을 익히 들었고, 1년 넘게 인턴 생활을 하면서 직접 느낀 부분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는 연구실 선배들도 다들 동의하는 부분이다.(아마도..?)

 

 '감사하다'라는 마음가짐이 절로 생기는 교수님이신데 마침 작년이 교수님 부임 10주년이었다. 그래서 방장 형과 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어떻게 교수님께 의미있는 10주년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방장 형의 아이디어는 '10주년 기념 감사패 전달'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김영란법' 때문에 사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방장 형은 이 문제를 아주 공대스럽게 해결했다. 제법 그럴싸한 방법이었다.

 

'구매' 대신 '제작'을 하자.

 

 감사패를 제작함에 있어서 비용이 들지 않으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섰던 것 같다. 마침 우리 학교에는 학생들이 3D 프린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메이커스페이스'가 입주해 있다. 따라서 3D 프린팅을 위한 파일만 있으면 우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감사패를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연구실에서 3D 모델링을 가장 잘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3D Max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논문에 들어갈 이미지를 직접 만드는 형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내 학부 졸업 논문에 들어갈 그림은 오토캐드로 직접 그렸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모델링된 파일을 3D 프린터로 예쁘게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인데, 연구실 내에서 3D 프린터 사용 경험은 내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마 방장 형이 나를 지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상황이 갖춰졌고 능력이 있는 상황에서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오토캐드를 사용해 모델링을 시작했다. 오토캐드는 중간에 수정할 경우 수정 과정이 기록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단계를 적절히 끊어 복사-붙여넣기를 통해 여러 단계를 거치며 모델링한다.

형들과 아이디어 회의 끝에 현재 연구실에서 진행중인 연구 내용들과 관련 있는 형태로 모델링했다. 마이크로니들(흰색)과 틸라코이드(초록색).

 

 완성한 3D 모델을 교내 메이커스페이스에서 3D 프린터를 통해 제작하였다. 메이커스페이스에는 '신도리코'사의 3D 프린터가 10대 가량 구비되어 있다. 감사패를 만드는 전체 과정 중 3D 프린팅 과정이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메이커스페이스에 3D 프린터는 많지만 하루에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및 횟수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감사의 말을 넣을 수 있도록 홈을 만들고(좌), 제작 시간을 고려해 서포트가 생성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우).

 

 만들어진 형태를 결합한 이후의 모습이다. 아마 그럴 일은 드물겠지만, 혹시나 바닥에 떨어지는 등 충격을 받는 상황에 대한 내구성을 위해 접착제로 붙이는 방법보다 볼트, 너트를 활용해 체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볼트가 통과할 구멍이나 너트를 고정할 틀의 형태는 모델링 단계에서 모두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볼트와 너트를 활용해 받침과 틸라코이드를 결합

 

 틸라코이드에 삽입할 마이크로니들을 제작했다. 기판에 고정된 3X3 세트를 한번에 만들면 제작 시간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한번에 하나의 니들을 완성하는 방식이 아닌 전체 9개의 니들을 오가며 동시에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보니 뾰족한 부분이 채 굳어지기 전에 노즐이 움직여 니들이 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씩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나씩 만들어 그나마 멀쩡한 마이크로니들

 

 접착제를 사용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받침-틸라코이드를 체결한 것처럼 볼트와 너트를 사용하기에는 접촉 면적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록타이트와 같은 순간접착제를 사용하면 본드가 건조되는 과정에서 주변이 하얗게 변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드락 본드를 사용했다. 건조 시간이 다소 긴 편이지만 완전 건조 후 내구도는 매우 훌륭하다.

틸라코이드 꼭대기에 미리 만들어둔 틈에 마이크로니들 삽입 & 우드락 본드로 부착

 

 제작이 거의 완료된 상황에서 보니 제법 감사패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좀 작은가 했는데 볼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 직전의 모습. 이제 감사의 글만 넣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방장 형이 준비한 감사의 글을 넣어서 완성했다.

최종 완성 형태

 

 모델링은 하루에 끝냈고, 제작은 메이커스페이스 사용 제약 및 본드 건조 시간 때문에 3일 정도 걸렸다. 사실 만들면서 조금 조잡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완성된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방장 형을 비롯한 연구원 형, 누나들이 괜찮다고 한마디씩 해준 덕분에 마음이 좀 놓였다.

 

 완성된 감사패는 연구실 전체 미팅 시간에 모두가 작성한 편지와 함께 교수님께 전달해 드렸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웃으며 받아주셨다. 아마 우리가 감사패를 만들어 드리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분위기가 좋으니 '교수님께 의미 있는 10주년 만들어드리기'는 성공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방장 형의 기획이 너무 좋았다. 사용할 수 있는 물적, 인적 자원을 모두 활용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결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작 과정 전체를 수행한 입장에서도 매우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내 재능을 의미 있게 사용한 것 같아 뿌듯하다. 캐드를 배우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코딩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었는데, 최소한 이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그때의 선택이 신의 한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연구에 필요한 뭔가를 또 만들 일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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