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연구에 필요한 부품 제작을 의뢰받았다. 연구실 사수 형이 나에게 있으면 좋겠다고 한 부분인데, 어차피 나도 사용하는 장비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아래 사진은 실험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이다. 노란색 테두리가 있는 은빛 원통형 물체는 렌즈이다. 실험 과정에서 저속으로 움직이는 μm 단위의 크기를 측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렌즈를 체결한 상태로 사용한다. 이때 카메라의 초점이 잘 맞아야 하는데, 왼쪽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카메라 렌즈의 무게 때문에 중심이 맞지 않아 오른쪽 사진처럼 뭔가를 받쳐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새로 실험법을 배울 때 보니 휴지(는 아니지만 편의상)를 접어서 받치는 것 같던데, 아마 지지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거치대를 만들기로 했다.

매번 임시방편으로 외부 조건을 통제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매번 임시방편으로 카메라를 고정하며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낭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매 실험 같은 조건을 유지한다고 보기 힘들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실험을 처음 배우게 되면 한동안은 그 실험에 대한 준비를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단 기간에, 매번 같은 상태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일정 시간을 할애한다. 실험에 영향을 미치는 외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통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면서도 내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부품은 직접 제작한다. 이번 문제의 경우, '카메라 거치대'가 그 방법에 해당하는 부품이 되겠다.

 

 나는 필요한 부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그 부품이 쓰일 환경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예를 들어, 높은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쓰일 부품이라면 부품에 작용하는 압력에도 변형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 힘을 버틸 수 있는 형태로 제작을 해야 할 것이고, 130~180°C 이상의 고온 환경에서 쓰일 부품이라면 3D 프린팅에 많이 쓰이는 PLA 재질은 사용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카메라를 고정한다'라는 비교적 단순한 목적을 가지는 이번 경우에는 제작된 부품이 기존 실험 장비에 올라갈 수 있도록 크기만 맞추면 다른 제약 조건은 없었다. 카메라에서 열이 발생하긴 하지만 PLA 재질이 녹을 정도의 온도라면 이미 카메라가 그 성능을 하지 못할 수준일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필요한 치수만 알아볼 정도로 기록했다. 

 부품을 설계함에 있어서 '치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부품이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에도 외부 제약조건(움직이는 경우 구동 범위라든가)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카메라 거치대'와 같이 기존 제품에 결합하는 형태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가장 먼저 '버니어 캘리퍼스'를 사용해 필요한 치수를 모두 측정했다. 굳이 실제 크기와 비율을 맞춰 그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캐드로 그리면 자연스럽게 맞게 될 테니까.

 

 이어 '오토캐드'를 통해 앞서 측정한 치수를 기반으로 카메라 자체를 모델링했다. 이번에 모델링하는 '카메라 거치대'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이지만, 카메라가 들어갈 자리를 고려하여 거치대를 만드는 것이 썩 편한 작업은 아니다. 이 문제는 거치대를 크게 만든 뒤 카메라 형상을 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거치대가 아닌 카메라를 모델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메라 자체를 모델링하는 것은 결국 '직육면체와 원기둥의 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쉽게 모델링할 수 있다. 

 

 측정한 치수 그대로 모델링한 카메라 형상을 3D 프린팅에 곧바로 사용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연구실에 있는 신도리코 3D 프린터의 경우 FDM 혹은 FFF 방식으로, 재료를 녹여서 밀어낸 것을 프린팅하고자 하는 형태에 맞게 한 층씩 쌓아 올려 제작하는 방식이다. 고온에서 압출되어 적층이 완료된 필라멘트(이번 경우 PLA)는 식으면서 수축하게 되고, 프린팅 결과물이 실제 크기보다 작아지게 된다. 수축의 정도가 육안으로 구분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 결합시키기 위한 부품을 정확한 수치 그대로 제작한다면 수축의 작은 차이 때문에 결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카메라 자체를 모델링할 때 약간 크게 설계한 뒤 큰 거치대에서 빼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경험상 기존 제품과 딱 맞게 결합할 수 있는 형태의 부품을 만들고자 할 때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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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률을 고려해 카메라를 모델링한 뒤, 이를 큰 거치대에서 제거한다. 모델링은 빠르고 간단하게.

 

 모델링한 거치대의 형태는 카메라 자체의 무게중심을 고려하여, 발생하는 모멘트를 상쇄시킬 수 있는 구조적 형태를 가장 적은 양의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하는 방향으로... 카메라가 무거운 쪽으로 기울게 되니 그 아랫쪽을 받치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적용한 형태이다. 실험 전체로 보면 카메라 거치대를 만드는 것은 도움이 될 뿐,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다. 정밀하게 적은 재료로 만들면 만족스럽긴 하겠지만, 이 상황에 있어서는 '정밀도'나 '재료의 낭비'보다 '제작 소요 시간'이 더 큰 관심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완성된 모델은 stl 파일로 저장한 뒤 3D 프린팅이 가능한 파일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친다. 신도리코사에서 제공하는 슬라이서 프로그램에서 stl 파일을 불러와 프린팅 조건을 맞추고 G-code로 변환한 뒤 3D 프린터로 전송하면 제작은 3D 프린터가 알아서 한다. stl 파일을 설정값에 맞게 G-code로 변환하는 것이 슬라이서 프로그램의 역할이다.

stl 파일을 G-code로 바꾸고, 이를 3D 프린터가 인식해 제작하는 과정. 사용한 3D 프린터가 저 모델은 아니다.

 

 완성된 부품을 카메라에 결합시켰을 때 정확하게 맞지 않았다. 전체적인 크기를 측정하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뒷부분에 튀어나온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다. 명백한 모델링 미스였다. 오차가 크지 않아 커터칼로 후가공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바닥의 구멍은 거치대에서 카메라를 분리할 때 밀어내기 위한 것인데 카메라와 거치대를 각각 잡고 당겨도 잘 빠져서 굳이 없어도 될 뻔했다. 오히려 덜 빠지게 할 필요가 있어 보여 노란색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이 추가되었다. 거치대에 고정시킨 카메라는 기울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기존의 카메라 위치에 딱 맞게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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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설계에 문제가 생기면 뒤에 감당할 일이 생긴다.

 

 모델링에 소요된 시간은 30분 남짓, 3D 프린터가 제작하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이다. 길게 잡아 2시간 30분을 투자해 매번 카메라의 균형을 맞추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균형을 잡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실험할 날은 많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이번 2시간 30분은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실험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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