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마주하는 큰 산을 하나 넘었다

한동안 블로그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바빠져 블로그에 정신을 쏟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밤새 실험하고 논문을 쓰는 날이 점점 늘어갔고 정말 급한 날에는 심지어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블로그에 들어올 시간이 있으면 한숨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취업 준비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 졸업이라는 것은 결국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은 중학교 입학으로, 중학교 졸업은 고등학교 입학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수능은 대학 입시로 연결되며, 대부분의 경우 대학 졸업은 취준생 혹은 직장인으로서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테크트리를 벗어나면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남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대학 졸업이 다가올 무렵 밥벌이냐 공부를 더 할 것이냐를 선택할 기로에 선 적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이라고 하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가 선택하는 길로 들어섰다. 연구실 인턴을 하고 있었고 이런 지도교수님을 만나기 쉽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이 된 이후에도 교수님은 한결같으셨다. 누군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다면 가장 먼저 지도교수님을 떠올릴 것 같다.

 

물론, 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원래 다니던 학과에서 전과를 했었는데 그 때문에 물리적으로 한 학기를 더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기업에서 곱게 봐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나 스스로도 과연 전공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특히 요즘 대부분의 기업에서 요구하는 토익이나 오픽 같은 영어 성적이 없었는데 이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돌아보니 핑계였던 것 같기도...)

 

물론 언급했듯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대학원을 시작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아, 나는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게 더 괜찮은 선택이었겠구나."

 

지금까지 워낙 하고싶은대로 살아왔던 터라 이런 상황이 되자 대학원 생활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실험 결과라도 잘 나왔더라면 좋았겠지만 심지어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분야들 중 실험이 어려운 편에 속하는 주제였다. 실험을 진행할수록 성과가 노력에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순간에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야는 관심이 있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부 졸업을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했던 졸업 작품 과목과 논문 과목에서 모두 A+를 받긴 했지만, 사실 더 재밌었던 것은 졸업 작품 과목이었다. 어쩌면 졸업 작품과 더 관련이 깊은 쪽으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볼 수도 있었을텐데 역시 이런 부분은 지나고 나면 보이는 부분이라 안타깝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졸업할 시기가 다가올수록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계속됐다. 반복되는 실험에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논문을 쓸 데이터도 쉽사리 구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밤을 새는 날이 많아졌고 지쳐갔다. 초조하게 실험을 진행하는 와중에 자퇴에 대한 고민도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었다.

 

반쯤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졸업까지 예비심사와 본심사 두 번의 시험을 거치는데 예비심사 일주일 전부터 결과되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사를 봐주신 교수님들께서는 다행히 결과를 좋게 봐주셨고, 앞으로 연구를 발전시켜 나갈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해주셨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없던 힘이 생기기도 한다. 더 이상 짜낼 수 있을까 싶은 상황에서 더 짜내는 과정을 통해 본심사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연구실 선배들이 "급하면 다 한다"는 말을 즐겨 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말이 맞았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중간중간 취업 원서 지원을 위한 오픽 시험도 보고 몇몇 기업에서는 서류전형에 통과해 최종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다가 집에 와서 면접을 보고 다시 학교에 갔던 날도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면접을 보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과는?

두 곳의 대기업에 합격했다. 4대 기업이라고 불리는 곳들 중에서 L사와 H사에서 합격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기업의 관점에서 내가 쓸모 있어 보인 모양이다.

감사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크게 기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내가 애초에 취업을 원하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전 글에서도 밝힌 바 있다. 이 블로그도 그런 관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하는 이유

 2019년 12월 1일 티스토리 블로그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전에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만들기도 했지만 만들기만 하고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하는 법을 모르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고. 그 때

writing-engineer.tistory.com

어쩌면 아직 대학원을 들어가기 직전 시점인 그때 뛰쳐나와 뭐라도 하는 것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해보면 당시 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가장 확실한 파이프라인취업이었다. 당장의 관점에서 보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학부 졸업 후 바로 취업에 도전해보지 않은 점이다. 실험과 논문으로 바쁜 와중에도 오픽은 하루 간격으로 시험을 치러(원래 이렇게 볼 수 없는데 일정 기간에 한번씩 몰아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각각 IH, AL 등급을 받아 대기업에 지원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학부 시절 졸업 작품 과목에서 워낙 큰 기여를 해 할 말이 많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부딪혀보지 않고 마냥 도망갈 생각부터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렇게 잘 나올 줄 몰랐다

어쨌든 이제 새로운 직장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으니 우선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할 일을 빠르게 해낼 수 있어야 직장 생활이 편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파이프라인을 쌓는 과정은 여차하면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더 자유로운 삶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가 일과 삶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내가 제어했어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출근, 퇴근 시간 없이 졸업이라는 목표 때문에 삶의 영역에도 실험과 논문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 생활이 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나에게 가장 좋은 경우의 수는 내가 하는 일이 재밌는 상황이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원하는 이유는 생존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도 조기 은퇴의 꿈을 꾸고 있지만 일이 재밌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는 다시 고민해볼 것 같다.

다행인 것은 간절히 원하던 취업은 아니었음에도 회사 생활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등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걱정이 앞서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기대가 된다.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는 것과 내가 성취한 것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대학원 생활이 많이 힘들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주제로 글을 조금씩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블로그 제목이 글쓰는 공대생인데 이제 글쓰는 직장인으로 바꿔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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