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기 중 'Conical tube'라는 것이 있다. 보통 실험에 필요한 용액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용액을 50 ml 이하의 소량으로 보관할 때 사용한다. 나뿐만 아니라 연구실 내 여러 연구원 분들이 실험을 위한 용액 제조와 제조된 용액을 보관할 때 사용한다.

 

 아래 사진에서 튜브 아래쪽에 위치한 장비는 '핫플레이트'라고 하는데, 흰 판 아래쪽에 회전하는 자석이 들어 있다. Conical tube에 섞을 용액과 '마그네틱 바'를 넣고 핫플레이트 위에 올린 뒤 회전 기능을 작동시키면 마그네틱 바를 회전시켜 용액을 휘저어 섞어준다.

 

 내가 실험에 사용하는 용액은 점도가 높은 경우가 많은데, 해당 용액을 제조할 때 Conical tube에 마그네틱 바를 넣어 섞어 주는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튜브를 그냥 올려놓으면 용액의 점도 때문에 마그네틱 바가 튜브 안에서 자체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용액에 파묻힌 채로 튜브 전체를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용액이 섞이지 않는 것은 물론, 여차하면 튜브가 넘어지기 일쑤이다. 내가 연구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테이프로 붙여 고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테이프가 원시적이긴 해도 튼튼해 보이긴 한다. 아래는 핫플레이트.

 

 처음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와서 용액 제조 방법을 배울 때 테이프를 사용해 튜브를 고정시키는 모습을 보고 의외로 원시적인 해결책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당시 상황에서 그보다 좋은 해결책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는 오토캐드로 설계하고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것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경진대회에 참여했던 것이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캐드만 붙잡고 있는 날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연구실에서 필요한 물건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유리 막대 건조대라든가, Conical tube 거치대라든가.

(경진대회가 무슨 소린지 궁금한 분들은 이전 글 참조)

 

Conical tube 거치대 ver.1

 

 거치대를 만들어 사용한 뒤 사수 형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나와 더불어 Conical tube에 용액을 만드는 일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대체로 만족스러웠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제조하는 용액의 양 자체가 적을 때는 마그네틱 바도 작은 것을 사용하는데 이게 돌아가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점도가 낮은 용액이라면 마그네틱 바가 돌아가는 소리라도 들려 회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점도가 높은 용액의 경우는 뚜껑을 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뚜껑을 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증발이 잘 일어나는 용매를 함께 섞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필요성은 더 일찍 느꼈지만 바쁘기도 했고 귀찮기도 한 까닭에 차일피일 미뤄왔다. 하지만 이제 내가 실험하기 위해 용액을 여러 차례 제조하면서 조성을 최적화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어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ver.1은 2개밖에 없기 때문에 업그레이드와 동시에 개수를 늘리기에도 좋은 기회였다. ver.1을 만든 파일이 있어서 간단한 변형을 통해 손쉽게 다음 단계를 디자인할 수 있었다.

 

 단순하게 옆에서 내용물을 볼 수 있도록 ver.1의 일부를 잘라낸 것이 전부이다. 프로그램은 역시 오토캐드를 사용했다. 잘라낼 각도는 임의로 60°로 정했고 기존 거치대에서 60°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꼭지각이 60°인 피자 조각 모양을 단면으로 하는 기둥을 원하는 부분에서 제거하기 위해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배치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align' 명령어를 사용했다. 겹치게 될 2개 또는 3개의 지점을 지정해주면 해당 기준점에 맞춰 형상을 알아서 정렬해주는 아주 유용한 명령어이다. 나는 특히 곡면이나 곡선을 가지는 도형을 배치할 경우 자주 쓴다.

 

ver.1에서 업그레이드 되는 과정

 

 아래 사진은 위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Conical tube 거치대 ver.2이다. 제작은 역시 3D 프린터를 통해 만들었다. 핫플레이트는 그 이름에 걸맞게 가열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온도가 150°C까지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작에 사용한 PLA 필라멘트는 유리전이온도 60 ~ 65 °C, 녹는점 173 ~ 178 °C를 가지기 때문에 가열하면서 용액을 섞는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제조 과정에서 그 정도 온도를 요구하는 용액의 경우 Conical tube보다 비커를 주로 사용한다.)

 

01
위 과정을 거쳐 완성된 Conical tube ver.2

 

 사실 한 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튜브를 고정하기 위한 틀의 형상이 원형일 때와 'C' 형태일 때 튜브를 잡아주는 세기가 달랐다. 'C' 형태일 때가 상대적으로 헐거워서 ver.2는 튜브가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정도로밖에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 원형일 때는 원주 방향의 응력이 전 방향에서 평형을 이루고, C 형태일 때는 한쪽으로 치우쳐서... 바로 구멍의 지름을 줄여 ver.3를 만들었다. 오히려 살짝 작게 만드니 튜브를 꽉 잡아줘서 안정적이었다. 개방시킨 틈으로 마그네틱 바가 회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Conical tube 거치대 ver.3 사용

 

 심각한 불편사항은 아니었지만 내가 사용하면서 다소 짜증 나는 부분이 있어 해결했다. 원래 만들었던 파일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설계를 수정하는 과정 자체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신도리코사 3D 프린터를 사용할 경우, 슬라이서 프로그램의 기본 설정을 유지한 상태로 프린팅 했을 때 약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간단한 수정을 통해 제법 큰 효용을 얻은 것 같다.

 

 경험상 거치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고정시킨다는 목적에 있어서는 더 편했다. 길게 테이프를 뜯어 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거치대를 사용해도 테이프로 고정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테두리에 살짝만 붙이면 고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첫 번째 사진과 비교했을 때 테이프 사용량은 10배 이상 줄어든다. 고정시키는 과정이 편리하고 테이프 낭비도 줄일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실 내가 만드는 과정을 즐긴 것이 가장 큰 의미이다.)

 

 50ml 들이 Conical tube는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으니 나와 같은 용도로 필요하신 분들은 가져다 사용하시는 것도... 다만 stl 파일이라 3D 프린터를 사용해 직접 제작을 하셔야 한다는 단점은 감안하시고...

 

Falcontube_braket_ver.3.stl
0.54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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