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코로나19 문제로 인해 학교에서는 계속 비대면 수업을 했다. 교수님들은 차라리 시험을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과제들을 내주셨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종합시험이 있어서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간과하고 코스웍을 빨리 끝내겠다는 욕심으로 시간표를 채운 것이 얼마나 과욕이었는지 나 자신을 제법 원망했다. 내 입장에서 올해가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기업 장학생까지 도전하면서 연말 시험기간이 아주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지원한 기업 장학생은 면접까지는 무난히 올라갔지만 면접을 보니 내가 기업에서 원하는 주제를 연구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예상대로 결과는 탈락이었다. 하지만 종합시험도 무사히 통과했고 성적도 전과목 A 이상을 받았다. 연말에 일이 몰린 것 치고는 제법 괜찮은 결과였다.

 

흥미로운 제목

 

 이렇게 한 학기 내내 시달리고 지친 마음을 달래보고자 단지 흥미가 가는 제목의 책을 도서관에서 한 권 빌렸다. 개인적으로 학문으로서 수학을 좋아하는데(분명히 말하지만 잘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제목부터 구미가 확 당겼다. 위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수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이다. 뭔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수학적인 원리를 적용해 해결책을 제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카하시 요이치라는 사람이 저자인데 도쿄대학교의 수학과경제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뭔가 이과와 문과 끝판왕을 둘 다 거친 천재의 느낌이 난다.

 

앞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

 

 경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고 하니 수학적인 내용을 접목해 경제와 관련된 내용들을 설명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대가 됐다. 수학을 학문으로서 좋아한다면 현실적으로는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목차 미리보기 1

 

 목차를 보면 책의 앞부분은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점차적으로 직장 생활에 이어 실생활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목차 미리보기 2

 

 후반부에는 주로 통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례들을 들어서 설명하는 부분도 있고 선거나 투표와 관련해서 확률통계를 적용하는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확률과 통계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좀 있었는데 이는 뒷부분에서 다룰 것이다.

 

제 1장. 수학은 어떻게 내 삶의 무기가 되는가

 

 첫 장에서는 수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숫자를 가지고 정량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회계'라는 것을 '돈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로 소개하며, 재무상태표손익계산서를 보는 방법과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학교 수업과 같은 느낌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관심 있던 분야라 더 집중하게 됐다.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위와 같은 자료를 보는 과정에서 용어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해 준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의 차이는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마치 궁금할 줄 알았다는 듯이 설명이 나와서 조금 놀랐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볼 때 어떤 항목이 어떤 자리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설명도 예시를 들어 설명해준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주식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볼 때가 있는데 이 안에는 많은 용어들이 있다. 하나하나 찾아보기는 좀 지치게 되는 그런 내용들이다. 그런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내용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영업 외 수익'이라는 항목에는 회사 건물을 임대해서 얻은 임대료나 회사의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해 얻은 배당금 등이 해당된다고 설명한 부분, '특별 이익'이라는 항목에는 부동산을 팔아서 얻은 이익 등이 해당된다고 설명하는 부분 등이 있다.

 

 이런 부분을 알고 있다면 기업의 장부상 실적이 본래의 기업 활동에 기인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적이 좋더라도 기업 활동 이외의 수익이 실적을 견인했다면 회사의 투자 매력도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투자를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 2장. 수학으로 어떻게 경제를 술술 읽을 수 있는가

 

 이 부분에서는 거시 경제미시 경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을 통해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수요 곡선공급 곡선이다. 미시 경제, 거시 경제 모두에서 이 수요 공급 곡선을 사용하는데, 다만 X, Y축의 이름만 바뀔 뿐이다.

 

수요 공급 곡선

 

 뒷부분에서는 수요 공급 곡선의 이동을 실제 사례와 엮어서 어떤 사회 현상이 나타나는지, 정책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와 같은 실질적인 내용에 대해 다뤘다.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정부가 가격을 조종하는 방법(조작한다는 뉘앙스가 아니다), 실업 문제 등을 수요와 공급을 중점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데 기존에 내 생각과 다른 부분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과 다른 주장도 있었다.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 위기가 온다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 하는 부분이다. 책을 읽은 후에도 나는 책을 읽은 이후에도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나름의 근거와 숫자를 가지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니 억지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새로운 관점에 대한 제법 흥미로운 주장이었다고 생각한다.

 

제 3장. 일 잘하는 사람의 경쟁력은 숫자에서 나온다

 

 많은 직장인들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들만한 소제목이 아닐까 한다. 첫 장에서 바로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숫자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막연한 느낌으로 문제점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느끼는 바가 있다. 

 

 대학원생들은 으레 그렇겠지만 매주 교수님께 한 주의 연구 성과를 보고하게 된다. 이때 근거 없이 내 생각만으로 실험 결과에 대한 설명이나 추후 연구 및 개선 방향을 말씀드리면 항상 질문을 하신다. 새로운 실험을 어떤 근거로 그렇게 설계했는지, 어떤 원리로 그 방향으로 개선을 하려고 하는지 등이다. 이때 숫자를 기반으로 말씀드리면 나도 설명하기 편하고 교수님도 수긍하신다. 

 

 예를 들면, "A 방법은 10번의 시도 중 2번 밖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선행 논문을 보니 이러저러한 사항이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이를 감안해서 새로운 A' 방법으로 실험을 재설계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답변에 대해서는 내 생각의 이유를 묻기보다 교수님의 의견을 더해 다른 방향도 함께 제안해 주시거나 내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보시면 결과를 궁금해하시며 용기를 북돋워 주신다.

 

 이 책에서도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슬금슬금 통계의 중요성을 함께 언급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 도수분포표부터 시작해서 평균 분산, 표준 편차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 겁을 먹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도 "일단 '이런 것이구나' 정도만 받아들이면서 읽어나가면 큰 어려움 없이 통계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있고, 책을 읽은 입장에서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공식이 나오긴 하지만 그에 앞서 평균, 분산, 표준 편차가 어떤 현상을 의미하는지, 왜 나오게 됐는지를 말로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제 4장. 내 미래는 점쟁이가 아니라 수학에게 찾아라

 

 이 장에서는 주로 통계를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실제 문제 해결에 접목하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베이즈 확률', '베이즈 통계학'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언뜻 머신러닝이나 인공지능 쪽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베이즈 확률 자체가 빅데이터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스팸 메일을 걸러내는 알고리즘 같은 것이다.

 

 베이즈 정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조건부 확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개념에 대한 설명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틀렸다고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이 글의 시작 부분에서 내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에서의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호한 부분, P.154

 

 위 이미지에서 빨간색 밑줄 친 부분이 내가 모호하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이공학도를 위한 확률 및 통계학 제9판, 자유 아카데미, P.73

 

 위 이미지는 내가 학부시절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통계학 수업 교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교재를 보면 모호함이 더 확실히 드러난다. 참고한 교재와 같이 P(BㅣA)'A가 주어졌을 때 B가 일어날 조건부 확률'이라면, 에서 나온 P(AㅣB)'B가 주어졌을 때 A가 일어날 조건부 확률'이 된다.(A, B 자리 바뀜) 이를 앞서 밑줄 친 것처럼 '사건 A가 일어날 때 사건 B가 일어날 확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모호하다. 이 문장만 봐서는 사건 A를 주어진 사건으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해 보인다.

 뒷부분에서는 베이즈 통계를 활용해 실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아래 이미지에서 왼쪽 초록색 글씨는 문제, 오른쪽 검정색 글씨는 풀이 과정이다.

 

내가 이해를 잘못 한 것일까

 

 조금 검색을 해보니 이런 형태의 문제는 베이즈 정리를 적용해 푸는 전형적인 문제인 것 같다. 문제는 빨간색 밑줄로 표시한 부분과 파란색 밑줄로 표시한 부분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 부분을 보면 "검사법 T를 적용하자 병에 걸린 사람의 비율은 3퍼센트"라고 하고 있다. 이를 책에 나온 표시법을 따라 확률로 표시하면 P(병진단)이 된다. '검사법 T를 적용'했기 때문에 이들은 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니다. 책에서는 파란색 밑줄로 표시한 것처럼 이를 P(병)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후 풀이 과정은 P(병)을 3%로 두고 푼 과정이라서 그 과정 자체에는 문제는 없지만, 애초에 문제 이해를 잘못한 풀이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P(병진단)을 3퍼센트로 두고 문제를 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책에 있는 풀이와는 전혀 다른 풀이가 나온다. 문제는 P(병진단)을 3퍼센트로 두고 풀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이 과정 중에 확률 하나는 1을 넘어버리고 하나는 음수가 나오는 단계가 발생한다.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문제인 것이다.

더보기

내가 직접 손으로 풀어본 결과이다.

 

답이 없다

 

 1, 2번 방정식을 연립해서 푸는 과정에서 P(병)< 0, P(건강)>1이 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성립할 수 없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가 해서 서울대 공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친구에게 풀이를 요청했는데 역시 음수가 나온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건 아마도 문제 자체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 이미지의 빨간색 밑줄로 표시한 부분에서 "검사법 T를 적용하자"를 지우면 책의 풀이대로 P(병)을 3퍼센트로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번역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을 한 사람이 통계학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면 문장 해석에 더 중점을 뒀을 것이고, 번역 후 직접 문제를 풀어보지 않았다면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뭐 진실은 저 너머에...)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제약회사가 확률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국가의 안보, 세계 평화를 확률이나 통계를 활용해 계산하는 등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앞서 모호한 부분들이나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만 제외하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제 5장. 문과 바보는 수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는 수준이 달라졌다

 

 다소 자극적인 소제목이 아닐 수 없다. 문과바보라고 칭하고 있긴 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그리 문과 이과를 나눠서 자극하는 내용은 없으니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장에서는 주로 정치, 특히 투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구조사 등을 통해 같은 데이터를 확보한다고 해도 현장에서의 취재 등을 반영하게 되면 언론사마다 다른 예측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책에서 나온 사례는 일본이었지만 우리나라도 흔히 어떤 언론사가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는 편향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국 전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사람이 당시로는 많지 않았다. 나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시절이지만 그의 기행을 보자면 대통령에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가 당선될 확률40%가 넘었다고 하니, 이런 부분을 알고 있었다면 상상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던 셈이다. 

 

마무리

 

 이 책은 제목에 수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수학이라기보다는 경제회계, 일상에서의 확률통계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수학이라는 단어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무기라는 자극적인 단어까지 결합해 제법 괜찮은 제목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내용적으로 봤을 때 내가 관심이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소 경제나 회계 분야에서 궁금한 점에 대한 답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책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이 분야에 대한 대학 교양 수준의 수업을 난생처음 들을 계획이 있는 대학생이라면 교양 과목 수강을 위한 교양 수준으로 개념을 맛보기 위해 가볍게 읽기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역시 확률과 통계에 대해서 다룬 뒷부분이다. 저자의 표현에 문제가 있었는지 번역가의 착오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모호한 표현과 틀린 풀이가 있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그만큼 앞부분을 흥미 있게 읽었고 개인적으로 배운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쉬려고 읽던 책이었는데 직업병(?)이 발동해버려서 뒷부분에서 좀 피곤하긴 했지만 이 과정 역시 재밌었던 것을 보면 나는 확실히 공대생이 맞는 것 같다. 분명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나 같은 공대생이 흥미를 가지고 읽기에는 괜찮은 책인 것 같다. 아무 이유 없이 숫자를 싫어하는, 이 책에서 바보라고 칭하는 문과 계열(나는 문과가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독자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별 3개 반은 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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