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기 위해 다양한 용액을 제조한다. 이때 사용하는 화학약품은 보통 가루형이 아니면 액체형이다. 액체형은 보통 부피 단위로 넣기 때문에 마이크로 피펫을 많이 사용한다. 원하는 수치만큼 설정해서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루형은 그 과정이 조금 까다로운데, 정밀저울에 직접 덜어가면서 무게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당연히 저울 위에 약품을 직접 올려놓지는 않는다. 주로 웨잉 디쉬(weighing dish)나 유산지를 사용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유산지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군생활 내내 썼던 것이라 익숙했기 때문이다. (수의병이라고 해서 실험실에서 복무하는 병과가 있다.)

 

 얼마전 실험을 위한 용액을 제조하려고 유산지를 사용할 일이 있었는데 유산지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휘어버린 유산지

 

 지퍼백 안에 그냥 들어있으면 유산지들이 정렬되지 않아 흩어져 구겨지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고무줄을 사용해 묶어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고무줄이 유산지를 조이면서 구겨진 상태로 보관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저울 위에 유산지를 올렸을 때 완전히 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약품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쪽 끝이 수직에 가깝게 서 있다 보니 약품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자꾸 건드리기도 하고 한 번은 손에 걸려 저울 내부에서 엎어진 적도 있었다. 저 유산지를 잘 펴진 상태로 보관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고려사항

 이번에 제작하고자 하는 유산지 케이스는 기존 방식에서 발생하는 유산지의 변형을 막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할 사항이 크게 많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아래와 같은 항목들을 따져볼 수 있다.

 

 

 단지 유산지의 형태 변형을 방지하기 위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상온 상태인 실험실에 위치할 것이고, 따라서 온도에 대해 걱정할 부분은 딱히 없었다.

 

공차

 

 유산지를 보관하기 위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유산지보다는 커야 한다. 또한 일정량 이상의 유산지를 다 넣을 수 있도록 유산지가 쌓인 높이 정도를 넣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유산지는 정사각형 형태였고 틀 안에 드나들기 어렵지 않도록 5 mm 정도의 공차만 넣으면 충분할 것 같았다.

 

강도

 

 케이스의 이름으로 만들 계획이긴 하지만 사실 충격을 받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도 역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혹시나 떨어뜨리는 일을 생각해도 약 1 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될 텐데, 그 정도 충격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작 과정

 앞선 과정들을 고려해 역시 3D 프린터를 사용해 PLA 재질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직육면체 형태에서 속을 비우고 유산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옆구리를 터 놓는 방식이 될 것이다. 모델링은 오토캐드 프로그램을, 제작에는 신도리코사 3D 프린터를 사용했다.

 

3D 모델링

 

 이번에도 역시 내가 사용할 줄 아는 유일한 프로그램인 오토캐드를 사용해서 모델링을 진행했다. 가장 먼저 치수를 측정해 유산지의 크기를 파악하고 현재 남아있는 유산지 양을 토대로 직육면체의 두께를 정했다. 모델링 과정은 아래 과정과 같다.

 

제작 과정

 

 먼저 위 이미지와 같이 유산지의 크기보다 약 5 mm 정도 더 크게 공차를 두고 케이스 자체의 두께까지 고려해 직육면체 형상을 만든다. 직사각형을 그린 후 EXTRUDE 명령어를 사용하면 쉽게 그릴 수 있다.

 

 이어서 앞서 그린 직육면체보다 원하는 두께만큼 크기가 줄어든 직육면체를 하나 더 그린다. SOLIDEDIT 명령어를 통해 면에 수직한 방향으로의 크기 변화를 줄 수 있다. 이때 유산지를 넣을 입구 쪽을 길게 만들면 한쪽이 뚫린 상자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케이스 전체 크기가 유산지의 크기와 같기 때문에 유산지가 노출된 부분이 없다면 케이스에서 꺼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반달 형태로 유산지가 노출될 부분을 만든다. 원기둥은 원을 그린 뒤 EXTRUDE 명령어를 통해 만들 수 있다. 이를 원하는 위치에 배치한 상태에서 SUBSTRACT 명령어를 사용하면 원래의 박스 형태에서 제거하는 방식으로 반달 형태의 노출부를 형성할 수 있다.

 

필수는 아니지만 깔끔하다

 

 위 이미지는 앞선 모델링 과정에 이어 라운딩을 진행한 결과이다. 3D프린팅을 할 때 모서리를 각진 상태로 두면 해당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경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산지를 펴진 상태로 보관하는 목적에 크게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욕심이다. 이미지만 봐도 오른쪽이 더 깔끔해 보인다.

 

 모델링을 완료하고 보니 좀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치수를 다 측정했고, 이를 반영해서 제작한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3D 프린팅을 진행했다.

 

원하는대로 잘 나왔다

 

 프린팅까지 완성하고 보니 제법 괜찮게 만들어 졌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역시 느낌일 뿐이었다. 치수를 잘 측정했다면 믿음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바로 유산지를 옮겨 담았다. 아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 적절하게 완성된 것 같다. 

 

마무리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던 지퍼백도 다 터진 상황이었는데 케이스를 새로 만든 김에 새로운 지퍼백에 담았다. 앞으로 깔끔하게 잘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나 말고 유산지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사용한다 하더라도 잘 펴진 유산지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번 조금이나마 편한 생활에 보탬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새로운 지퍼백에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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