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사용하던 헤어 드라이어에 문제가 생겼다. 바람 세기가 3단계, 온도가 3단계인데 가장 강한 바람세기로 설정했을 때 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공돌이가 사용하는 헤어 드라이어 정도의 가전제품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아마 십중팔구 뜯어볼 것이다. 나 역시 공돌이다. 지금 책장 한 구석에 잠들어 있는 수천만 원짜리 공학사 학위증이 조금이라도 그 가치를 해낼 수 있도록 헤어 드라이어를 수리해 보기로 했다. (학위증이 무슨 상관..?)

 

분해

 일단 헤어 드라이어를 뜯었다.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아야 그에 따른 해결책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립된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손잡이 부분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걷보기는 멀쩡한 상태

 

 갈라져 있는 부분을 보니 아무래도 1 → 2 →3 순서로 분해를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1, 2 순서는 바뀌는 것이 크게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우선 1번을 먼저 해체했다. 하필 나사 머리가 삼각형 홈이었지만 십자드라이버로 풀 수 있었다.

 

원인

 원래 전체를 다 분해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손잡이 부분을 해체하면서 바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스위치와 연결된 선이 끊어진 것이다.

 

자유를 찾은 전선들

 

 노란색 원과 초록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을 보면 분명 어딘가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자유를 찾은 상태였다. 바람 세기를 3단계로 했을 때 왜 소리조차 나지 않고 작동하지 않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전기가 흐르지 않으니 작동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노란색 원은 노란색 화살표, 초록색 원은 초록색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정상적으로 구속된 전선들

 

 사실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각 전선의 역할이 어떤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데나 연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하나 더 있는 멀쩡한 헤어 드라이어를 뜯었다. 덕분에 위 이미지처럼 연결되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결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납땜이다. 납땜은 할 줄 알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우선 끊어진 검정색 전선부터 시작했다.

 

납땜을 위한 전처리 과정

 

 빨간색 원으로 표시한 것처럼 피복을 더 벗겨낸 뒤 꼬여 있는 가는 전선 가닥들을 풀었다. 끊어진 양쪽을 모두 풀어준 뒤 흰색 원으로 표시한 것처럼 겹쳐서 눌러줬다. 경험상 저렇게 두 전선을 엮어둔 상태에서 납땜을 진행하는 것이 편하다.

 

 끊어진 두 부분이 따로 노는 상태에서 납땜을 하려면 손이 네 개가 필요한데 난 손이 두 개뿐이다.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난 혼자였다. 편한 방법이 있는 데다가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고 경험상 문제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꼬아 놓은 상태로 진행했다.

 

잘 붙어 있도록 고정

 

 위 이미지는 연결한 부위를 전기테이프를 사용해 고정시킨 것이다. 전선이 내부에서 끊어졌다는 것은 그 부분이 지속적으로 꺾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끊어졌다가 연결된 부분이라면 더 끊어지기 쉬울 것이기 때문에 전기테이프를 통해 강화했다. 가열하면 수축하는 수축 튜브라는 것이 있지만 가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차선책을 택했다.

 

 이어 파란색 전선을 연결할 차례이다. 스위치에 연결해야 하는데 역시 손은 두 개밖에 없는 관계로 스탠드를 사용해 스위치를 고정시켰다.

 

두 번째 난관

 

 노란색 원으로 표시한 부분을 보면 남아있는 금속 부분이 너무 짧아 그대로 납땜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 피폭을 더 벗겼다. 그리고 스위치에 남아있는 납을 그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잘 붙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전선이 납을 계속 밀어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붙었다

 

 위 이미지는 우여곡절 끝에 납땜에 성공한 모습이다. 주황색 원으로 표시한 부분처럼 스위치에 전선을 연결할 수 있는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활용했다. 자꾸 납을 밀어내기에 그냥 전선을 저 구멍으로 밀어 넣은 채로 땜질을 했다. 아주 튼튼하게 잘 붙었다.

 

납이 밀린 이유

 

 전선끼리 연결할 때도 그렇고 스위치에 전선을 연결할 때도 그렇고 납이 전선에 잘 묻어나지 않았다. 인두로 납을 녹이는 과정은 좋았는데 녹은 납이 전선에 닿으면 자꾸 구슬처럼 굴러다니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내가 납땜하던 상황에 가장 부합하면서 설명이 잘 된 블로그가 있었다. 냉땜이라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냉땜이란?

irmus의 정의 : PCB의 동박 패턴과 부품의 다리(lead) 사이에 납땜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이르는 말. 영어로는 cold soldering joint 그림을 보며 살펴보자.(발로그린건

irmus.tistory.com

 링크한 블로그의 글은 PCB 기판에서의 납땜 사례이긴 하지만 내가 겪은 어려움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냉땜 현상인두나 PCB 둘 중 하나라도 충분한 온도에 도달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현상인 것 같다. 인두를 켠 상태로 드라이기를 분해하기 시작했으니 문제는 전선일 것이다.

 

 전선과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납땜을 할 땐 당연히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선이 둘 다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납땜을 진행했기 때문에 전선을 충분히 가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이 문제를 구슬 형태의 납 덩어리를 전선 위에 올려둔 상태로 인두를 사용해 계속 펴 바르는 것으로 해결했다. 아마도 펴바르는 과정에서 전선이 가열되고, 그 덕분에 납이 제대로 발라진 것이 아닌가 한다.

 

 스위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위치는 가열했지만 전선은 가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접촉시켰기 때문이다. 이럴 땐 역시 구조적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해 스위치의 전선 연결부에 있는 구멍으로 전선을 밀어 넣었다.

 

 가열하는 과정에서의 주의사항도 있었다. 너무 오래 가열하면 PCB 기판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PCB와 달리 스위치내부 구조의 물리적 접촉에 의해 작동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열에 대한 내구성이 조금은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

 생각보다 납땜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때문에 수리하는 시간도 길어졌지만 납땜을 마무리하고 조립 전에 콘센트에 꽂아 확인해본 결과 아주 멀쩡하게 잘 작동했다. 덕분에 전선을 모두 올바른 자리에 연결한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인두로 스위치를 좀 오래 지진 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맞추면 들어간다

 

 그렇게 수리를 마친 스위치를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밀어 넣었다. 이 과정에서 연결한 전선이 다시 끊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좀 됐다. 생각만큼 한 번에 쑥 들어가지 않아 힘으로 밀어 넣은 경향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가자

 

 우려는 있었지만 다행히 조립 후에도 문제없이 작동했다. 이렇게 뭔가를 또 고쳐냈다는 성취감과 새로 사야 하는 헤어 드라이어에 대한 비용 절감에 성공했다. 미용실에서 다이슨 드라이기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조용하고 힘이 좋아서 한번 살까 잠깐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가격을 보니 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 비용을 30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해 절약할 수 있었다. 시급으로 치면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특히 지금은 휴가 중이라 여가 생활 겸했다고 생각하면 아주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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