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인턴 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대학원생으로 입학한 지금도 그렇고 실험을 하는 과정에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개선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특정 부품을 만들어 해결이 가능하고,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 실험 시간을 단축하거나 난이도를 낮출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번에 관심을 가진 문제는 일종의 실험 준비 과정에 있었다. 준비 과정 자체가 보통 2일 정도를 필요로 해서 개인적으로는 이것도 하나의 실험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실험 준비 과정은 나 혼자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 내 같은 팀원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진행한다. 따라서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팀원들도 불편하게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내가 느끼는 문제점은 초원심분리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초원심분리
초원심분리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밀도가 다른 물질들이 혼합되어 있는 상태에서 고속으로 회전시켜 밀도 차이에 따라 정렬시킬 수 있는 장비이다. '초'원심분리라 함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원심분리보다 RPM이 높기 때문이다. 전처리 과정에서는 대략 4,000 RPM 정도의 회전을 사용하는데 실제로 필요 물질을 추출해내기 위해 초원심분리를 할 때는 20,000 RPM에서 최대 38,000 RPM까지의 회전수를 사용한다.
사용법
사용법은 매우 간단하다. 선배님들의 노고를 통해 이미 초원심분리기 사용 조건들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회전수나 온도 같은 부분들이다. 설정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부이다. 물리적으로 할 일은 버킷을 로터에 잘 걸어주고 그 로터를 다시 초원심분리기 내부에 잘 설치하면 된다.
위의 왼쪽 이미지가 로터이고 오른쪽 이미지가 버킷이다. 버킷 내부에 맞는 튜브에 분리시킬 물질을 넣고 각 이미지에서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을 연결해주면 준비는 끝난다.
로터를 뒤집어보면 위 이미지의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것처럼 봉이 있어서 갈고리 형태의 버킷을 걸 수 있다.
주의사항
초원심분리기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물론 온도와 같은 다른 변수들도 중요하지만 균형이 맞지 않으면 장비가 자체적으로 작동하기를 거부한다. 차라리 거부하는 것이 낫다. 균형이 맞지 않은 채로 고속 회전을 하면 초기에는 소음 정도로 그치겠지만 나중엔 회전운동이 편심 운동이 되면서 고장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이 매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표시한 것처럼 실제 원심분리기가 작동하는 중 로터가 깨지는 사고가 발생한 사례이다. (참고로 로터는 티타늄과 같은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다.) 균형이 맞지 않은 것이 원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런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는 로터에 버킷을 걸 때 무게를 동일하게 맞추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각 버킷을 걸 때는 버킷의 위치가 회전축을 중심으로 점대칭이 되도록 걸어야 한다.
문제점
위 과정에서 내가 생각한 문제점은 무게를 동일하게 맞추는 과정에 있었다. 양팔저울을 사용하는데 버킷 자체가 위가 뚫려 있는 형태인 데다가 하단부는 둥글게 되어 있어 양팔저울에 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팔저울의 양 접시 위에 안정적으로 버킷을 올려 무게를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이전까지 계속 위 이미지처럼 버킷을 양팔저울 접시 위에 걸어서 무게를 비교했다. 물론 익숙해지면 아주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좀 귀찮다. 접시를 보면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있는데 그게 접시받침의 형태이다.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다. 그리고 버킷은 반드시 십자가의 네 귀퉁이들 중 하나에 걸어야 한다. 네 귀퉁이란 위 이미지에서 노란색 원으로 표시한 부분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왼쪽 이미지는 이전 이미지처럼 접시받침이 있는 노란색 원 부분에 버킷을 건 상황이고 오른쪽 이미지는 접시받침이 없는 부분에 버킷을 건 상황을 간략하게 나타낸 것이다. 접시받침이 있을 때는 접시받침이 접시가 기울어지는 것을 막아주지만 접시받침이 없을 때는 오른쪽 이미지와 같이 접시가 기울어진다.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접시가 접시받침에 붙어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 실험을 할 때 이를 간과하고 진행했다가 기껏 준비한 샘플을 엎을 뻔했다.
또 다른 문제는 무게를 맞추기 위해 용액을 추가해야 할 경우 발생했다. 접시 때문에 버킷의 윗부분이 많이 가려져서 용액을 넣기가 힘들었다. 마이크로 피펫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용액이 접시나 접시받침에 묻는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무게 자체는 변하기 때문에 양팔저울 위에서는 양쪽의 무게를 맞출 수 있지만 버킷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초원심분리기에 넣을 때에는 맞지 않는 무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해결방안
접시 위에 안정적으로 버킷을 고정시킬 수 있는 틀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형태의 부품을 이전에도 만든 적이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치수 재기부터 진행했다. 사실 접시 위에 올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노력이 많이 필요한 단계는 아니었다. 한 가지 개인적인 욕심은, (물체가 양팔저울 중앙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모멘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되도록 접시의 중앙에 질량이 집중되도록 하고 싶었다. 이런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단지 접시의 바닥 면적의 지름만 알면 충분했다. 버킷의 치수 재기가 매우 편했던 기억이 난다. 강성이 좋은 재료를 사용해 버니어 캘리퍼스로 강하게 눌러도 전혀 변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부품 사용 환경을 고려해 봤다.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은 없었다. 실험은 상온에서 진행되고 거치해야 할 버킷이 고정틀 자체에 변형을 일으킬 정도로 무거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PLA를 사용해도 강도 측면에서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한 가지 고려할 사항은 무게였다. 양팔저울에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두 개를 만들게 될 텐데 이때 부품 두 개의 무게 차이가 심하면 곤란하다. 3D 프린터로 제작을 할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늘 그래 왔듯 오토캐드를 사용했다. 기본적인 형태는 Conical tube 거치대를 만들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원뿔대 형태를 만들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원뿔대는 'Taper' 명령어를 통해 쉽게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었고 불필요한 부분은 내가 모델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명령어들 중 하나인 'Substract' 명령어를 사용하면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소모되는 재료의 양을 줄이기 위해 버킷을 고정시키기 위한 중심 부분과 이를 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격벽을 제외한 많은 부분을 제거했다. 버킷의 뚫린 윗부분을 막는 뚜껑도 초원심분리를 할 때 같이 들어가는 부품이기 때문에 뚜껑을 놓는 자리도 따로 마련했다. 양팔저울의 양쪽에 두 개의 거치대를 대칭 형태로 올려두면 된다.
위 이미지의 왼쪽은 모델링이 완료된 모습이고 오른쪽은 완료된 모델을 stl 파일로 변환시킨 뒤 3D 프린터로 제작한 결과물이다. 이젠 그리 새롭지도 않지만 프린팅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대체로 정확하게 원하는 형태를 얻을 수 있다. 적어도 외관에 한해서는 그렇다.
의외로 무게 부분에서 한 차례 문제가 있었다. 제작 시간을 줄이기 위해 3D 프린터 두 개를 동시에 사용했는데 결과물의 무게가 다른 것이었다. 다른 점은 필라멘트의 색깔이었는데 아마 이 부분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하나의 프린터로 두 개를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무게 차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수점 두 번째 자리 이하의 차이 정도는 양팔저울 영점 조절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후기
만든 것은 제법 오래됐지만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들어 놓기만 하고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았더니 선배님들도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처음 사용한 것 같은데 직접 사용해보니 내가 불편하다고 느낀 부분들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이제 마이크로 피펫을 가지고 다른 부분에 용액이 닿을까 노심초사하는 일 없이 마음 편하게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미미한 영향이긴 하지만 실험 진행 속도도 살짝 빨라졌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실험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한 가지 사라졌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
나는 아직까지 내가 만든 결과물이 만족스럽다. 공학은 삶에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대학원생인 나에게 실험은 삶의 일부이니 배운 대로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업그레이드를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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